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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의 진화생물학》 서문읽기2015.12.04

 

 

 

롭 브룩스 지음 | 최재천·한창석 옮김 | 440쪽 | 16,500원 

2015년 11월 20일 발행

 

 

 

 

 

진화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왜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비만이 많은가? 일부다처제가 결코 남성들의 판타지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그토록 많은 록가수들이 이름도 없이 잊히는데 왜 젊은이들은 록에 빠져드는가? 진화는 영생 대신 노화와 죽음을 선택하였는가?

자연선택은 상상할 수도 없는 긴 시간 동안 작용하며 오늘날의 인류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우리는 진화가 지금 바로 현재의 인간들은 설명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기고 오로지 경제적 또는 문화적 관점에서 인간을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진화는 지금도 바로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다. 진화생물학자 롭 브룩스는 이 책에서 경제, 문화 연구가 진화적 관점과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 보여주며, 비만, 여아 살해, 경제적 불평등, 출산 감소 등 현재 사회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나는 내가 꿈에 그리던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은 내가 사춘기 시절부터 꿈꾸던 일이다. 나는 섹스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 밥 먹고 산다. 나는 사람을 비롯한 동물의 형태와 행동이 자연선택에 의해 어떻게 다듬어져 왔는지를 연구하는 진화생물학자다. 내가 하는 일은 자연에서 곤충이나 열대 어류를 관찰하고 실험실에서 키우는 일이다. 하지만 내 일은 은행일보다 재미있고, 웨이트리스보다 급여가 좋고, 록 밴드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대체로 더 안정적이다. 진화생물학자들에게—또 많은 청소년에게—섹스만큼 흥미진진하고 오묘한 주제도 없다. 이것은 진화가 일어나는 과정인 자연선택이 모두 번식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최적자 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에 대해 당신이 알고 있던 것은 잠시 내려놓자. 생존은 단지 진화라는 큰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다. 동물, 식물, 균류, 박테리아, 바이러스들은 모두 그의 부모, 조부모를 비롯한 모든 조상이 자손을 적어도 하나라도 성공적으로 낳고 길러냈기 때문에 오늘날 존재한다. 단순하게 말해서, 어떤 개체는 번식을 하고 다른 개체는 번식을 하지 못하면 자연선택이 일어난다. 자연선택은 무언가를 설계하기에는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인 과정이지만 설계가 자연선택의 전부는 아니다. 잠자리의 섬세한 날개부터 사람의 언어 능력까지, 생명체에서 기능적으로 화려한 모든 형태는 정말 지루한 과정—매 세대마다 어떤 개체가 다른 개체보다 성공적으로 번식하는 과정—의 부산물이다. 이런 이유로 나와 같은 진화생물학자들은 번식과 섹스에 푹 빠져 있다.

내가 이 책을 쓰는 여러 이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진화가 정말 흥미롭고 중요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내 동료 학자들과 학생들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진화를 연구하고 있다. 최근 우리 연구진은 수컷 거피guppy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유전자가 어떻게 그 유전자를 지닌 수컷을 단명하게 하는지, 최고의 몸 상태를 위해 왜 수컷 귀뚜라미는 탄수화물을, 암컷 귀뚜라미는 단백질을 필요로 하는지, 암컷 쇠똥구리는 어떻게 자신의 며느리들의 양육 행동을 통제하는지를 밝혀냈다. 우리는 또한 진화생물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크리켓 좌타자가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성공할 수 있는 이유, 개발도상국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비만 위험이 높은 이유를 설명해왔다.

이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은 대부분 섹스로 귀결된다. 직접적이지는 않아도 섹스와 번식은 언제나 진화의 핵심이기 때문에 섹스는 모든 것을 바꿔버린다. 시드니의 뉴사우스웨일즈 대학에서 우리가 행한 연구들은 오늘날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대학, 박물관, 동물원, 자연보호구역에서 행하는 일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 모든 훌륭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우리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를 통한 경이로움은 내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진화는 매력적이며, 정말 중요하다. 자연선택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철학자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은 자연선택이 ‘인류가 생각해낸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라고 했다. 또 자연선택은 대단한 주장인 것도 같지만 현실 속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결국 자연선택이라는 정말 간단한 과정은 빵곰팡이에서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에 이르기까지 생물계 전부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교육 수준이 높은 국가에서조차 일부의 사람들만이 대니얼 데닛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동네 서점에는 진화에 관한 좋은 책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 밖의 대부분의 책들은 자기계발서, 데이트 기술, 점성술, 다이어트, 잡다한 경영 관련 책처럼 뭔가 미심쩍은, 일부는 정말로 유해한, 책들이다. 사람들은 대중과학 분야의 책보다 사이언톨로지 책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만, 그들이 그 책에서 얻는 것은 결국 어리석은 자는 돈을 잃게 된다는 불행한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생물을 연구하는 전문가도 그 생물이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곤 한다. 다윈 의학의 열렬한 옹호자 중 하나인 랜돌프 네스Randolph Nesse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의 여러 의과대학에는 아직 진화생물학 전공 교수가 없고, 이미 꽉 찬 커리큘럼에 진화에 관한 수업을 억지로 끼워 넣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 하지만 다윈 의학의 통찰력은 암과 알츠하이머병의 기원이나 우리 몸이 감염에 대응하는 방법, 우울증과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의 근원, 임신합병증을 유발하는 부, 모, 자식 간의 복잡한 갈등 양상을 설명한다. 우리가 어떻게 감염이 되고, 어떻게 질병에 걸리고, 다른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겪는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의학이 발전했다. 하지만 왜 우리가 아프고, 왜 우리 몸과 마음이 병원균과 스트레스에 반응하는지를 이해하게 되면, 의학은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진화적인 통찰의 중요성은 의학에서 그치지 않는다. 진화는 농업, 어업, 바이오테크놀로지, 환경 보전, 탄소 계산 문제와 같이 생물이 관여된 모든 부분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무엇보다, 진화는 삶의 의미와 이유를 알려준다. 진화심리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은 인간의 행동과 동기에 대한 통찰을 제시했고, 프로이트가 노트를 쫙 펼치면서 “자, 이제 당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말해봐요.”라고 물은 이후로 심리학을 가장 크게 발전시켰다.

이 책의 목적은 종합적이고 완벽하게 진화를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화생물학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세계를 살짝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나는 주로 작은 동물을 연구했지만 최근에는 학생들과 함께 인간을 대상으로 몇 가지 가설을 실험하고 있다. 결국 진화에 대한 내 관심은 인류의 역사와 삶을 이해하고픈 욕구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나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이 정말 재미있다. 이 책에서 나는 어떻게 진화적 관점이 우리에게 익숙한 문제들에 대해 실용적이고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지 설명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 하나를 해결함으로써 어떤 주장을 이끌어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여기서는 단지 진화적 관점을 맛볼 수 있는 몇 개의 주제를 다룰 뿐이다. 만약 이 주제에 대해 더 궁금한 독자가 있다면, 현대 사회의 진화에 대한 나의 글을 읽을 수 있는 웹사이트 www.robbrooks.net 를 방문해도 좋다.

 

지금도 진화는 일어나고 있다 Recent history happened too

 

현대 인류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환경과 매우 다른 환경에서 진화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적응하고 있는 환경은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환경의 범주에 들어간다. 따라서 누가 우리의 조상이며, 그들이 어디에서 살았고, 어떻게 번식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바로 그 조건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 인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할 사전 지식은 다음과 같다. 7백만 년 전부터 5백만 년까지 우리 조상은 그 일부가 지금의 침팬지(보노보와 침팬지)로 진화한 아프리카 숲에서 살아가던 유인원이었다. 그 이후로 단속적인 과정을 통해 우리 조상들은 모든 면에서 현생 인류와 점점 닮아갔다. 뇌는 점점 커졌고, 직립 자세가 되었고, 피부에는 털이 사라졌다. 2백만 년 전까지 우리 조상은 초식생활을 주로 하던 유인원에서 잡식생활을 하는 사냥꾼 또는 식물을 먹는 채집인으로 변했다.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라고 불리던 당시 우리 조상은 현생 인류와 많이 닮아서 비전문가는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유럽과 아시아 대부분(중국 동부 및 인도네시아) 지역까지 뻗어나갔다.

20만 년 전까지 아프리카의 호모 에렉투스는 점차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진화했다. 인류의 조상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비교적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대략 6만 년 전까지 아프리카에 살았던 현생 인류 집단에 이어진다. 이 집단의 후손은 아프리카 전역뿐 아니라 소아시아로도 이동했고, 결국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들은 사냥하고 낚시를 할 수 있는 새로운 땅을 찾아서 해마다 움직였고 인구도 점차 늘어났다. 이미 외형적으로는 현생 인류인 이들은 호모 에렉투스나 다른 전현생pre-modern 인류를 멸종시켰다. 어떤 곳에서는 네안데르탈인과의 교잡도 이루어졌다.

오늘날 모든 이의 조상은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뻗어나가던 6만 년 전의 아프리카 수렵채집인이다. 이들은 아프리카의 거대한 서식지에서 살았다. 이르면 12,000년 전까지 모든 인류는 여전히 수렵채집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점유한 지역은 해마다 넓어졌다. 하지만 모든 수렵채집인들이 다 똑같은 생활을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서식지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의 종류나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갔다.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쿵 족은 포유류를 사냥하고 식물을 먹으며 살아갔다. 그리고 북극의 이누이트 족은 바다 포유류들을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아 먹었으며 식물은 거의 먹지 못했다.

지난 12,000년 동안 세계 곳곳의 사람들은 나무를 키우고(원예), 농작물을 재배하며 가축을 길들이는 법(농업)을 배워나갔다. 원예와 그로부터 이어진 농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농업으로의 전이는 수백, 수천 년이 걸린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과정이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6,000년 전까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농사를 지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농부와 수렵채집인이 수 세기 동안 서로 어울리며 함께 지냈다. 아마존 부족과 같은 일부 현대 부족 사회에서는 나무를 키우긴 해도 작물이나 가축은 키우지 않았다. 심지어 소수의 현대 부족 사회에서는 여전히 사냥과 채집이 유일한 생계 수단으로 남아 있다.

우리 조상은 대부분의 역사를 수렵채집인으로 살았지만 오늘날 많은 이의 조상은 수백만 년 동안 농부였다. 농업이 인간의 삶에 초래한 엄청난 변화들과 그로 인해 일어난 중대한 진화적인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젖이 나오는 동물을 가축화했던 조상의 후손은 유제품을 잘 소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농사를 지었던 조상의 후손들은 그렇지 않았던 조상의 후손에 비해서 알코올을 더 효과적으로 분해할 수 있는 유전적 회로를 지니고 있다. 이는 오로지 농부들만이 술로 발효시킬 수 있는 여분의 곡물을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이 모두 아프리카의 사바나와 같은 곳에서 수렵과 채집을 하며 오래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상상하고 싶겠지만, 심지어 아프리카 내에서도 우리 조상이 맞닥뜨렸던 환경은 당혹스러울 만큼 다양했다. 마치 오늘날 사람들이 북아프리카의 아틀라스 산맥, 중국 동부의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 그린란드의 동토(얼어붙은 땅), 브라질 아마존의 무성한 열대 우림 등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 조상도 온대 우림, 열대 산호섬, 남극 툰드라, 사바나 초지, 타는 듯한 사막 등의 다양한 환경에서 생활했다. 심지어 같은 생활 환경에서도 찾아 먹을 수 있는 음식, 식수의 질, 주변의 인구밀도,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력 등 주변 환경이 서로 달랐다. 주변 이웃의 사회적 지위나 스트레스 수준도 서로 달랐을 것이다.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여러 환경을 경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의 성장 과정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들은 대개 이런저런 환경들 속에서도 잘 작동한다. 인간 진화의 이야기 중에서 다양한 환경에 대처할 수 있도록 자연선택이 우리를 어떻게 만들어왔는가에 대한 것은 아직 대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책의 주요 주제이기도 하다.

 

사회에서 진화의 입지 Evolution’s place in society

 

150년 전에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자연선택을 처음 설명한 이래로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인류가 생각해낸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대로 모르거나 평가절하하고 있다. 이런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과학과 종교 사이의 해묵은 갈등, 둘째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방식들과 진화가 어떻게 어울릴지에 대한 불확실성, 마지막으로는 진화 과정에 대한 고루한 관점이다.

신앙faith과 이성reason 사이의 갈등은 적어도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우리와 함께 해왔고, 앞으로도 조만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이 갈등을 해소하기도 하며, 또는 그냥 둔 채 살아가기도 한다. 무신론자는 신앙이 없기 때문에 내적 갈등에 시달리지 않는다. 종교인들 또한 신앙의 영역과 이성의 영역을 구분하고, 이성과 과학으로 세상을 이해하고자 한다. 하지만 어떤 종교인은 이성을 거부하려고 한다. 그들은 세상을 설명하려고 할 때 여전히 과학 이전의 설명 방식을 고수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러한 고집이 이성과 서로 부딪히는 것이다. (심지어 21세기에도 미신이 퍼져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무지가 지속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이런 잘못된 믿음을 퍼뜨리는 사람들은 그들의 가르침과 리더십에 의존하는 추종자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

이러한 갈등은 사회에도 피해를 끼친다. 왜냐하면 과학자들이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밝히고 그것을 진정으로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그 원리를 설명해주는 데 집중하지 못하고, 고리타분한 관점들을 바로잡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주변 세상에 대해 호기심이 많다고 가정하고, 창조 신화나 신앙, 이성 간의 갈등 따위에 대한 지루한 논의는 피했다.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고루한 믿음을 떨쳐내는 데 괜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서도 과학이 제공하는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진화적 사고가 생각만큼 권위를 갖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진화가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방식들과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은 상상할 수도 없는 긴 시간 동안 작용하며 오늘날의 생물들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온 그 시간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우리에게 즉각적으로 보이는 경제적 또는 문화적인 과정에만 집중한다. 이 책에서 나는 경제나 문화에 대한 연구가 진화와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보이고 싶다. 또한 진화를 통해 우리가 우리의 삶, 인류의 역사, 사회를 개선하는 방향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다. 오늘날 진화학과 경제학의 관계는 사랑이 싹트는 연인과 같다. 하지만 진화와 문화—여기서 문화는 우리가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사회적으로 배우고 얻게 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의 관계는 오랫동안 상처받고 소원해진 연인 같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갈라선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진화와 문화가 완전한 화합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화해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

 

시드니에서 로스엔젤레스를 거쳐 뉴욕으로 가는 24시간 동안의 비행은 학대와도 같다. 모든 일이 잘 풀리면 집에서 출발한 지 약 24시간 뒤에 어딘가의 호텔에 체크인하겠지만 날짜는 바뀌지 않는다. 2008년 어느 따분한 여행의 초입, 콴타스 클럽과 보딩게이트의 중간 즈음에서 나는 스티븐 레빗Steven Levitt과 스티븐 더브너Stephen Dubner의 유쾌한 베스트셀러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해, 비행기가 태평양을 건너기도 전에 다 읽어버렸다. 나는 이 책이 우리의 일상 행동에 주는 통찰력에 매료됐다. 그중에서도 나에게는 행동경제학과 진화생물학이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는 사실이 가장 인상 깊었다. 예전부터 진화생물학은 경제학에서 통계적 접근 방법이나 아이디어를 차용했고, 그 지식은 양쪽에 모두 영향을 주었다. 나는 ‘세상의 숨겨진 이면’에 대해 대담하게 묻고 유쾌하고 진지하게 답한 베스트셀러를 읽고 있었지만, 그 책의 물음들은 나와 내 동료 생물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실험을 통해 답해왔던 것이었다.

진화학과 경제학은 인간 행동을 이끄는 보상과 비용을 이해하는 두 개의 큰 틀이다.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돈 또는 시간, 행복, 지위, 그리고 (모호하지만 매우 중요한 모든 것을 지칭하는) 효용성 등의 조건을 저울질한 뒤 보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것은 진화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진화생물학자는 사람을 비롯한 생물들이 왜 다른 것보다 어떤 특정한 보상에 반응하는지 궁금해한다. 왜 사람은 돈을 벌고자 하는가? 왜 우리는 도박을 즐기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들이는가? 그리고 왜 행복과 지위는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한가?

경제학은 위의 ‘왜?’라는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다. (우리가 돈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떤 물건을 사고 싶기 때문이고, 물건을 사고 싶은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답해진 모든 문제들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진화를 공부하면 우리는 ‘왜?’라는 질문에 가장 근본적인 대답을 할 수 있다. 진화는 ‘개인이 극대화시키고 싶어하는 무엇’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경제학적 개념인 ‘효용성’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사람들은 행복, 재산, 안전, 따뜻함, 웰빙, 영양가 있는 음식, 지위, 멋진 섹스 등을 원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자연선택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낸 보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상을 위해 우리는 진화적 적합도evolutionary fitness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행동한다. 또는 그러한 행동을 통해 우리 조상들이 살던 환경에서 적합도는 최대가 됐을 것이다.

진화학과 경제학은 가까워지고 있지만 (마이클 셔머는 이것을 새로운 합성어 ‘이보노믹스Evonomics’라고 칭했다), 인간 행동에 대한 진화적 설명과 문화적 설명 간의 관계는 아직 싸늘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우리 행동을 설명하는 방식에 있다. 유전자와 환경, 생물과 문화가 마치 경쟁적인 선택지인 것처럼 둘의 영향을 구분짓는 방식 말이다.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이 서로 깔끔하게 구분되는 것인 양, 행동이 전부 유전적이라거나 혹은 완전히 문화에 의해서만 형성된다는 말을 듣는 게 드문 일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행동은 컴퓨터에 비유한다. 본성은 하드웨어로, 문화는 소프트웨어로 비유한다. 행동이 ‘배선되었다wired’, ‘고정되었다hardwired’, 또는 ‘프로그램되었다programmed’는 글을 얼마나 많이 접했는가? 이런 관점은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먼저 우리의 본성을 하드웨어로 간주하면 그것이 결정되어 있거나 고정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만약 본성이 우리 유전자 안에 새겨져 있다면, 누가 그에 거역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회학자는 아직도 교조적으로 환경, 학습 그리고 다른 사회적 과정이 인간 행동을 결정짓는 단연코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또 일부 사회학자는 어떠한 형태의 생물학적인 설명도 거부한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거의 같은 표준 컴퓨터를 지니고 있으며 개개인의 차이는 우리 경험이 기계를 어떻게 프로그래밍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 컴퓨터는 쉽게 다시 프로그램 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뇌라는 하드웨어를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의 뇌는 경험에 따라 변하며 배움에 따라 정밀하게 발달한다. 학습에 의해 뇌 세포 간에 연결이 생기고 강화(‘재배선re-wire’이 아니라)되는 것이다. 결국 뇌 또한 신체 기관이다. 오늘날 신경과학에 따르면, 우리의 사고와 의식은 뇌의 신경 세포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반응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진화에 따른 생물학적 본성을 경험, 문화 및 학습의 영향과 구분짓지 말아야 한다. 본성은 곧 문화의 물질적 기반이다.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Stephen Pinker는 그의 뛰어난 저서 《빈 서판: 인간의 본성은 타고나는가The Blank Slate: The Modern Denial of Human Nature》에서 본성과 양육, 유전과 환경, 진화와 문화 간의 잘못된 이분법을 완전히 붕괴시킨다. 그는 이러한 구분이 ‘지식의 지평을 가르는 마지막 벽’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나와 함께 이 벽을 넘어 유전이나 진화를 결정론적이고 고정된 것으로 보고 문화나 환경은 한없이 유연한 것으로 보는 경향을 거부해야 한다.

‘마지막 벽’은 그 둘의 싸움을 즐기는 여러 매체들 때문에 아직도 존재한다. 진부하게도, 그들은 여전히 본성과 양육, 유전과 환경, 진화와 문화를 대치시킨다. 언론에서는 마치 매우 중요한 유전자 하나가 발견되었다는 것처럼 대대적으로 광고한다. 심장병 유전자, 비만 유전자, 게이 유전자, 바람둥이 유전자처럼 말이다. 이러한 유전자는 단지 심장병에 걸리고, 비만이 되고, 게이가 되고, 배우자를 속일 확률을 정말 작은 확률로, 그것도 어떤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 게놈의 몇만 개의 유전자는 서로 다른 형질에 영향을 주며, 결국 우리 삶의 여러 측면에도 영향을 준다. 주어진 형질은 우리 게놈 전체의 유전자들이 수많은 상호작용을 거친 결과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무슨 무슨’ 유전자 이야기에 빠져 있고, 이런 현상 때문에 유전자와 운명은 구태의연하고 그릇된 방향으로 연관된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대부분의 형질들은 전체의 게놈에서 수백, 수천 개의 유전자의 지침에 따라 만들어진다. 결국 하나의 유전자는 아주 작은 영향만 미칠 뿐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독자들은 어떤 유전자가 관련되어 있고 그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세부 과정은 알 필요가 없다. 이 책에서는 단일 유전 과정의 한 부분만 다룰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유전자 하나의 영향이 얼마나 복잡하고 정치적으로 위험한지, 또 유전자를 결정론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에 대해서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SRYSex-determining Region Y라고 불리는 유전자는 사람의 절반 정도가 지니고 있다. 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은 살인자, 또는 살인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으며, 교도소에서 죽음을 맞거나 사고로 사망하거나 또는 노년기에 온갖 질병에 걸려서 죽을 위험이 높다. 하지만 SRY가 나쁜 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다. 진화적 적합도의 측면에서, SRY를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차이는 없다. 비록 자손을 남기지 못한 사람들 중에는 SRY를 소유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많지만, 역사적으로 후손을 정말 많이 남긴 사람들은 모두 SRY를 지닌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진화적으로 최고의 승리자라고 할 수 있다.

SRY 유전자는 남성의 Y 염색체에 존재하는 성을 결정하는 유전자다. SRY 유전자는 분자 수준의 복잡한 연쇄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배아를 수컷으로 발생시키는 핵심적인 유전적 지침을 암호화하고 있다. 이러한 지침이 없다면 우리의 신체는 초기 설정을 따라서 암컷으로 발생하게 된다. 오로지 남성들만이 SRY 유전자의 복제본들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SRY 유전자의 영향은 정말 결정론적이다. 왜냐하면 SRY를 지닌 배아는 모두 생물학적인 수컷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SRY 유전자가 수컷 신체를 형성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SRY는 또 다른 유전자들에게 신체를 남성으로 만들 준비를 하라는 신호만 보낼 뿐이다. 만약 SRY로부터 신호가 없다면, 몸은 여성이 될 준비를 한다. 각 유전자들이 어떻게 맡은 바를 수행할 것인지의 여부는 또 다른 수많은 신호의 세기와 타이밍에 달려 있다. 각각의 신호를 주고 받는 데 연관된 유전자가 있으며, 이 유전자의 발현과 그 신호의 효과는 유전자가 존재하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SRY 유전자는 남성성을 결정하지만 그 마지막 결과물은 정말 다양하다. 근육 크기, 체모의 양, 목소리 굵기, 공격성 등 남성과 관련된 모든 특징들이 남성들 간에 얼마나 다양하게 나타나는지 한번 생각해보라. 남성들처럼 여성들도 같은 형질이 개인마다 다양하게 발현되며, 그 형질의 분포 범위는 남성의 것과 다르지만 겹치는 부분 또한 존재한다. 따라서 SRY처럼, 남성다움이란 단지 큰 키와 두꺼운 근육과 많은 체모를 갖출 가능성이 증가하는 것이며, 한편으론 살인을 저지를 위험성도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된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살인마가 되는 것은 아니며, 마찬가지로 여자가 된다고 해서 살인마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성다움 또는 여성다움도 운명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은 바비 인형처럼 가장 여성스러운 성향부터 지아이조처럼 가장 남성스러운 성향까지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여기는 남성다운 또는 여성다운 형질을 모두 가질 수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만 사람들은 그들의 생물학적 성 정체성을 따라 매우 전형적인 남성 혹은 여성의 신체와 행동을 보인다.

진화생물학자는 복잡한 남녀의 차이 그리고 성 정체성의 복잡한 정의를 다루기 두려워하며, 자신들의 연구가 성차별, 소외, 탄압 등의 현상에 조금이라도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연구를 꺼린다. 하지만 성을 결정하는 발생 단계의 단순한 스위치 하나는 분명 우리의 삶에 지속적이고 매우 예측 가능한 영향을 준다. 나는 이 책에서 생물학적인 성차가 어떻게 발생하고, 그 생물학적인 차이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며, 문화, 경제 등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어떻게 남성-여성 간의 권력 관계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볼 것이다.

 

존재, 당위 그리고 희망 Is, ought and wishful thinking

 

창조론자와 종교 근본주의자가 진화생물학을 경멸하는 이유는, 진화생물학이 우리가 누구이며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묻기 때문이다. 창조 신앙은 순종적이고 호기심 어린 신도들에게 생물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신도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지시하는 우화일 뿐이다. 이에 반해 과학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설명한다. 과학자는 그들이 진심으로 답을 원하기 때문에 묻는다. 그리고 때때로 그들은 그 답이 다소 불편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고생물학자이며 진화 대중서의 거장 중 한 명인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나의 지적 영웅 중 하나다. 1979년, 그는 유전학자인 그의 동료 딕 르원틴Dick Lewontin과 함께 인간 행동에 대한 진화생물학적 연구가 ‘그럴싸한 이야기just-so storytelling’ 또는 ‘팡글로시즘Panglossism’의 위험성이 짙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들이 말하는 ‘그럴싸한 이야기’란 특정 형질들이 어떻게 진화하고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과학적인 설명인 것처럼 꾸며내는 것을 말한다. 이는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의 《그럴싸한 이야기Just-so stories》에서 나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키플링의 작품 《코끼리 코는 왜 길어졌을까요?The Elephant’s Child》에서는 ‘온통 피버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잿빛의 림포포 강둑에서’ 호기심 많은 꼬마 코끼리가 그의 코를 문 악어와 오랫동안 밀고 당기다 보니 코가 길어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팡글로시즘은 모든 것이 최적의 상태라고 믿는 낙관적인 세계관이다. 볼테르Voltaire의 소설 《캉디드Candide》에서, 팡글로스 박사는 어린 학생이었던 캉디드에게 사람들은 모든 가능한 세상들 중 가장 훌륭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가르친다. 코는 안경을 쓸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고, 다리는 브리치즈(무릎 아래를 여미는 반바지의 일종 — 옮긴이 주)를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심지어 팡글로스는 자신의 매독조차 순조롭게 진행되는 거대 계획의 일부분이라고 이야기한다. 팡글로시즘은 자연주의적 오류—존재로부터 당위 또는 선善을 이끌어내는 오류—를 겉만 번지르르하게 치장한 것일 뿐이다. 이러한 오류는 현상을 자연 속의 질서, 심지어 신성 세계의 질서로 단정짓는 데 자주 이용되는 성의 없고 상상력이 떨어지는 사고 방식이다.

나도 굴드나 르원틴의 주장처럼 존재로부터 당위를 이끌어 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 행동에 대한 진화적 접근은 인간 본성의 선한 모든 부분들—협동, 이타성, 기부, 사랑, 호의, 겸손—을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이 덕목들보다 더 대중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주제가 있다. 살인, 형제 살해, 영아 살해, 폭력, 강간, 노예 제도, 문란한 성관계, 육식 습관, 속임수, 복수, 체벌 등이 그것으로,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런 분야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사람들은 위대한 일을 해내고 또 한편으로는 극악무도한 일들도 행하며,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동안 그러한 행동을 계속 해왔다.

진화생물학적 연구를 ‘팡글로시즘’이나 ‘그럴싸한 이야기’에 불과하다며 경멸하는 굴드와 르원틴의 마르크시즘 추종자들과 골수 사회구성주의자들social constructionists은 그들이 진화에 대해서도 같은 공포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해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인류의 흉측하고 악독한 부분이 적응적일지 모른다는 주장에도 똑같이 몸서리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이해하는 것과 그런 면들을 정당화하고 면죄부를 주는 것의 차이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인간 본성 이면의 진정한 기원을 밝히는 것보다, 단지 우리가 갖고 있는 끔찍한 성향들을 사악하다고 치부하고 언론 매체, 가부장제, 계급 갈등과 같은 정체불명의 사회 속 악령들을 비난하는 편이 훨씬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귀찮으니까 악령을 내세우는 것이다. 언론이 탄압의 도구라면 우리는 탄압을 일삼는 사람들이 왜 언론을 이용하는지에 대해 물어야 한다. 만약 가부장제가 여권을 실추시킨다면 우리는 왜 가부장제가 존재하며 그 제도 속에서 누가 이득을 얻는지를 찾아야 한다. 이에 대한 답은 명확하지도 단순하지도 않다. 이 책에서 나는 사회적 권력과 갈등이 개인의 서로 다른 진화적 이해관계에서 어떻게 유래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또 진화가 왜 인간 행동이라는 퍼즐의 잃어버린 한 조각이 되는지를 다시금 강조할 것이다. 진화를 제대로 이해하면, 모든 덕목과 악덕, 왜 평범한 사람들이 흉측하고 도덕적인 일을 함께 행하는지, 또 왜 우리가 우선적으로 그러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지도 이해된다. 예를 들어 이 책의 8장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여아를 대상으로 한 낙태가 일반적인 유산 빈도 이상으로 일어나는 이유, 그리고 갓 태어난 여아들이 살해 당하는 이유를 알아볼 것이다. 하지만 진화가 여아 낙태 및 영아 살해의 근원을 설명한다고 해서 극악한 범죄가 수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자연주의적 오류를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왜냐하면 매일같이 누군가는 ‘어떤 행동은 본능적이다.’라는 주장으로 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을 그럴듯하게 합리화하곤 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수장과 보수주의 정치가들은 이성애자로서 평생 일부일처로 사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은 성적으로 문란한 것이라며 맹렬히 항의한다. 어떤 이들은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동성애도 이성애와 똑같이 자연스럽다고 주장한다. 진화는 우리가 이러한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진화적 역사가 성적 문란함이나 성 정체성 같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제들에 어떤 도덕적 서품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현재 모습이 되어왔는지 이해하고, 인간 행동이 표현되는 범주의 폭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우리 사회 속에서 그릇된 것들을 바로잡는 더 넓은 과정에 지혜롭게, 또 조심스럽게 반영해야만 한다. 

 

‘그럴싸한 이야기’의 가치 In defence of just-so stories

 

‘그럴싸한 이야기’는 굴드와 르원틴이 팡글로시즘을 비꼬던 것과는 다른 시각으로 읽혀야 한다. 어렸을 적에 나는 어머니가 남아프리카의 크루거Kruger 국립공원에서 만났던 동물들의 습성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다. 실제로 어떤 이야기들은 과학적으로 입증되기도 했다. 이것은 ‘그럴싸한 이야기’의 가치를 뜻한다.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 속에서 그냥 그려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그럴싸한 이야기와 과학이 다른 부분은 과학은 단지 사사로운 것이 아닌 증명 가능한 가설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과학은 아이디어를 분류하고 구분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가설을 검증하는 한 올바르지 않은 가설이 입증될 일은 없다. 틀린 아이디어는 기각된다. 바로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말이다.

진화생물학이 경제학이나 문화연구학 등과 함께 놓일 때 인간 본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화생물학이 지닌 힘을 다음의 11장에 걸쳐서 전달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때로 ‘그럴싸한’ 이야기를 꾸며내볼 필요도 있다. 이 책에 담긴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훌륭한 증거에 기반했다. 하지만 일부는 아직 초기 증거를 바탕으로 했고, 또 일부는 새로운 가설인 것도 있다. 나는 이러한 주장의 대부분이 옳다고 밝혀질 것이며, 나머지 부분도 앞으로 논파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일단 이러한 사고를 하지 않고서는 과학이 진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럴싸한 이야기는 하나의 중요한 단계이다. 생태학의 선구자인 로버트 맥아더Robert MacArthur는 “세상에는 틀린 것보다 안 좋은 것들이 많다. 그중 하나는 진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내가 이 책에서 인간의 진화에 대해 서술하는—그리고 앞으로 다른 저자들도 사용하리라고 희망하는—방식은 만일 그것이 진부함을 넘어설 수 있다면 틀릴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서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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