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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철학책』 서문읽기 2015.10.05

 

 

어떤 어린이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종류가 32가지나 있는 가게인데, 어린이는 두 가지 맛을 고를 수 있습니다.

 멀리서 그것을 지켜보던 사람이 그 어린이가 딸기 맛과 초콜릿 맛을 고를 거라고 말합니다.

어린이는 정말로 딸기 맛과 초콜릿 맛을 골랐습니다.

대단한 추측입니다만 우연히 맞았을 수도 있고,

그 어린이가 평소에 무슨 맛을 좋아하고 그 여자가 건망증이 심했는지 알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 추측이 우연이 아니며 그 어린이나 여성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다만 자신은 지금 세상을 이루고 있는 입자 하나하나와 사람들의 뇌 구성을 모두 다 알고 있어서

사람들의 다음 행동은 물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두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자기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로또를 살 때 어떤 번호를 고를지 맞힐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정말로 그 사람이 그가 말한 번호를 골랐습니다.

그 사람은 더 나아가 오늘 밤 로또 추첨에서 어떤 번호가 나올지도 맞힐 수 있다고 말합니다.

로또 추첨기 안의 공기와 공의 움직임과 추첨기를 조작하는 사람의 뇌의 구성과 손의 움직임을 모두 알아서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러더니 정말로 그 사람이 말하는 번호가 당첨되었습니다.


만약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신이거나 초능력자일 겁니다.

설령 그런 신이나 초능력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만약 세상이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면 우리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생깁니다.

내가 딸기 맛과 초콜릿 맛을 고르고, 깜빡 두고 온 바이올린을 다시 찾으러 가고,

로또 번호를 고르는 것은 모두 자유의지로 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선택을 하도록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나 우리가 부리는 동물과 달리 우리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는 점을 의심해본 적이 없는데,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니요.


사실 자유의지가 없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딸기 맛과 초콜릿 맛의 아이스크림을 고를 테고,

우리 가족의 생일을 조합해서 로또 번호를 고를 테니 자유의지가 있든 없든 별 상관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한 행동이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내 행동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내가 누군가를 때리면 그 행동에 책임을 물려 처벌을 합니다.

하지만 자유의지에 따라 누군가를 때린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때리도록 이미 결정되었다고 한다면 나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장난감이나 동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곤란한 점 때문에 사람들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유의지가 의심의 대상이 된다거나 자유의지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자유의지를 의심하고, 자유의지가 없다면 인간에게 어떻게 책임을 물을지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아주 소수의 특별한 철학자만 그렇게 의심하고 고민하는 게 아니라 다수의 철학자가 그 고민에 참여합니다.


철학은 기존에 있던 지식이나 상식을 의심하고 반론을 제기하고 새로운 생각을 내놓으면서 발전해왔습니다.

철학자들은 보통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그 결과에 상관없이 이성의 냉철함과 엄밀함으로 끝까지 생각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철학들이 대표적인 그 결과입니다.
소나 돼지는 죽이면서 왜 사람은 죽이면 안 되는가?

외모나 인종을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되면서 왜 지적 능력이나 실력으로 차별하는 것은 용인되는가?

사람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죽음은 꼭 나쁜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철학자들은 사고를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그리고 결론이 상식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해도 그것이 오로지 이성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그 생각들은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내일도 해가 뜰지 모르겠다거나, 착한 것도 운이라거나, 갓난아이는 죽여도 상관없다는 주장은 섬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구가 둥글다는 과학자의 주장도 처음 나왔을 때는 별났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도 했습니다.

당대의 상식을 넘어서는 이런 생각은 당대의 상식에 균열을 일으켰지만, 이제는 상식이 되었고 역사는 진보했습니다.

철학자들의 위험한 생각도 우리의 상식을 깨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롭고 현명한 시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험하다고 내치지 말고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런 과정을 통해 발전했으니까요.


과학의 주장은 그 진리와 사실을 대조해서 밝히므로 상식이 아닌 것이 상식이 되는 일이 흔합니다.

그러나 철학은 무엇인가와 대조하여 진리를 밝힐 수 있는 이론이 아니므로 상식적인 철학적 이론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철학 이론이라는 게 그 본성상 상식에서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론이라면 철학의 독특한 방법론이 더 많이 적용된 것 아닐까요?

그만큼 눈여겨볼 이유가 있을 겁니다.


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나름 오래 하다 보니,

제가 하는 생각이나 쓰고 있는 개념들이 다른 사람에게 낯설게 느껴지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철학에 종사하는 사람끼리 철학 토론을 할 때는 우리가 별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당연히 느끼지 못했고,

학생이나 일반인들도 철학자들은 으레 그러려니 생각해서인지 그 별남을 심각하게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제가 날마다 고민하는 이런 주제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상당히 특이하게 여겨지겠구나 싶었습니다.

특별한 사고방식과 접근 방법이 있다는 점은 철학 이외의 학문이나 직업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래도 철학이 다른 학문에 대해 갖는 토대적인 성격이나 우리의 사고방식 그 자체를 문제 삼는 특별한 위치를 생각할 때

철학자들이 왜 그런 식으로 사고하는지 소개하는 일은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는 상식과 어긋나는 철학자들의 주장을 모으고,

철학자들이 왜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사고과정을 세밀히 보여주었습니다.


왜 위험하기까지 한 어떤 생각은 철학이 되었을까요?

그 생각들은 철학자들이 흔히 하는 말로 ‘이성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이르게 된 결론입니다.

물론 철학에는 ‘정설’이나 ‘다수설’ 같은 게 없고, 

어떤 주장이든 끊임없이 비판의 대상이 되므로 그런 비상식적 주장도 상식에 근거해 다시 비판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철학적 사고 과정을 따라가 보는 것 자체가 철학적 토의에 직접 참여하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처럼 ‘이성이 이끄는 대로’ 생각하다 보면 철학자들이 내놓은 생각에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테고,

그럼 새로운 철학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겁니다.


여기서 다루는 주제들은 제가 동의하는 내용도 있고 아닌 내용도 있지만, 최대한 동의한다고 생각하고 썼습니다.

단, 각 장의 끝에 그 주제를 어떻게 반론할 수 있는지 ‘뒤집어 보기’에 소개해두었습니다

(이 항목은 자연철학에 해당하는 1장에만 없습니다).

주제를 고르다 보니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철학의 전 영역을 골고루 다루게 되었습니다.

1~3장은 형이상학, 4~6장은 인식론, 7~12장은 윤리학과 정치철학의 주제입니다.

서로 독립적인 주제이므로 어느 주제부터 읽어도 상관없지만, 간혹 다른 주제를 참조해야 할 때는 어느 장을 보라고 언급했습니다.

흄이나 칸트처럼 철학사에서 널리 알려진 철학자가 아닌 현대 철학자들의 이름은

본문에서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장 끝의 ‘더 깊이 읽기’에서 밝혔습니다.

누구의 주장인지보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가 더 중요하니까요.


제 의도를 마음껏 펼칠 장을 마련해준 바다출판사 김인호 사장님과

기획 단계에서부터 유익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준 김원영 편집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말랑말랑하게’ 전달하려고 많이 애썼지만,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철학의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딱딱한 부분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꾹 참고 사고의 흐름을 좇아가는 게 철학의 방법론이고 묘미라는 말로 변명해봅니다.

저의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는 당연히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따끔한 지적 부탁드립니다.

 

2015년 10월
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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