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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편지』편집후기2014.07.25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편집후기 _ 편집  1팀 김원영

 

 

하느님은 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 주시지 않나요?

 

 

 

 


 

 

죽기 직전에 믿기만 하면 된다고?
절에 다니긴 하지만 종교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엄마는 집에서 가깝고 저렴하다는 이유로 선교원에 날 보내셨다. 사랑반, 소망반, 믿음반을 거치면서 나는 몇 가지 그리스교도와 관련된 기억을 남길 수 있었다. 밥 먹기 전에 부르던 노래나 좋아하던 소망반 선생님이 갑자기 인도네시아인지 어딘지 이름조차 생경한 나라로 ‘선교 활동’을 한다며 떠나 버렸던 것 같은. 그중에서 나를 오랫동안 갸우뚱하게 한 말이 하나 있다. 언제라도 좋으니 죽기 전에 하느님을 믿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단 이야기다. 흠, 그럼 죽기 직전에 “하느님을 믿습니다.” 하고 유언처럼 남기면 살아생전에 지었던 죄를 다 용서받을 수 있는 건가? 도둑도, 살인자도 마지막에 그렇게 하기만 하면 다 용서받을 수 있나?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교회에 갈 일이 별로 없었으니, 그 궁금증은 오랫동안 ‘해결 미상’인 채로 남아 있었다.

 

하느님은 왜 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 주시지 않나요?
그 이후 교회에 다시 갔던 건 딱 한 번,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선생님이 교회에 다닌단 얘기를 듣고 나서였다. 재보다 잿밥에 관심을 두고서 그 선생님이 다니던 작은 교회에 발을 들였다. 목사님 설교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믿지 않는 건 죄입니다.” 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어온 나로선, 그 말이 마치 나를 죄인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기에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들의 낯선 모습이 겹치면서 교회는 내가 갈 곳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대학에 간 이후엔 전도 활동을 너무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리스도교에 대한 거부감은 더 깊어질 뿐이었다. 어느 날, 집요하게(?) 쫓아오는 대학생 선교회 활동가에게 물었다. “하느님은 왜 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 주시지 않나요?” 일단 믿기만 하면 그런 물음은 생기지도 않을 거라는, 당황스러움이 묻어나는 답이 돌아왔다. 이해가 되지 않는데 어떻게 믿으란 말이지? 그게 어떻게 내 물음에 대답이 될 수 있지?

 

교황이 어느 날 무신론자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나와 비슷한 물음을 가진 한 무신론자가 있었다. 이탈리아의 유력지 <라 레푸블리카> 창립자인 에우제니오 스칼파리는 칼럼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물었다. “무신론자가 죄를 지어도 신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가?” “절대적인 것은 없고 일련의 상대적인 진실이 있을 뿐이라 믿는 건 죄인가?” “인간이 멸종하면 신을 생각하는 존재가 사라지는 건데, 그럼 신도 사라지는 것 아닌가?” 사실 답을 기대하고 물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황에게 답장이 왔다! 그것도 아주 다정하고 성의 있게, 개인적인 경험을 담아서. 교황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무신론자 언론인에게 편지를 보낸 건 처음이었으니, 전 세계에서 주목할 만한 ‘파격적인 사건’인 건 당연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정부를 비판해 오던 김 아무개가 대통령에게 궁금한 점을 신문에 기고했는데, 대통령이 답장을 보낸 거나 다름없는 일일 게다. 더군다나 편지를 보내고 한 달이 채 지나기 전, 스칼파리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는 교황의 전화를 받는다.

[사진설명] 무신론자인 스칼파리(오른쪽)가 보내온 편지에 프란치스코 교황(왼쪽)이 직접 답장을 하면서 종교의 의미 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신앙은 다름을 존중하는 공존 속에서 성장 합니다
교황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진리가 절대적이라는 이야기는 신자들에게조차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것은 이탈되어 있는 초월적인 것, 모든 관계를 벗어나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따르면 진리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고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따라서 진리는 관계입니다!” 신앙은 다름을 존중하는 공존 속에서 성장한다는 교황의 편지를 읽고 나는 비로소 내 오래된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예수와 우리 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경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밝히려는 게 아니라, 예수와 더불어 우리가 유일한 아버지의 아들이고 우리가 모두 서로 형제라는 사실을 말해 주기 위함입니다. 예수의 독특함은 배척이 아니라 소통의 원천인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를 나누고 그들 사이를 단절하려는 게 아니라, 예수를 통해 신의 사랑을 전하려고 하는 것, 곧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 이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라는 것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이해했다.

 

 

가장 프란치스코 교황다운 책
이 책을 만드는 중에 한 편의 동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혹시라도 교황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 길 한복판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전신마비 소녀를 위해 교황이 잠시 차에서 내려 기도를 해 주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었다. 소외된 자를 위해 스스럼없이 행동하는 교황의 모습에서, 어떻게 가톨릭교회의 수장이 무신론자를 포용하는 편지를 보낼 수 있었는가에 대한 답을 보았다. 그것이 ‘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행동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스칼파리에게 교황이 답장을 보낸 이후 <라 레푸블리카>의 지면 위에서는 세계적인 학자들-인문학자나 시인, 신학자 등이 펼치는 토론의 장이 열렸다. 종교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예수는 어떤 사람인지,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혹은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깊이 있고 진지한 토론이었다. 이 토론을 보며 감동했다. 인간을 긍정한다는 것, 인간을 믿는다는 것에 대한 여러 사람의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간 사랑에 신에 대한 믿음의 존재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네이버 편집후기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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